무병장수의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이언스타임스 (2006/01/10)

이덕환(서강대, 화학과)


새해를 맞이하면서 돌아본 지난해가 다사다난(多事多難)하지 않았던 경우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한 해는 정말 다사다난했다. 특히 우리 과학기술계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다. 그렇다고 좋은 소식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2003년도를 기준으로 우리의 평균 수명이 남성은 73.9세, 여성은 80.8세에 이르렀다는 통계청의 발표가 바로 그것이다. 세계 최장수 국가인 일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당당한 선진국 수준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10년 전인 1993년의 평균 수명보다 남성은 5.1세, 여성은 4세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사실 그런 즐겁고 놀라운 변화가 지난 10년 동안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줄곧 우리의 평균 수명은 2년에 1년 꼴로 길어지고 있었다.

오늘날 태어나는 아이들은 해방둥이들보다 평균적으로 무려 30년을 더 살게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에게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또 있을 수가 없다. 불로초를 찾아 헤매던 진시황의 꿈이 빠르게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 통계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우리의 자연과 생활 환경이 크게 악화되었고, 과거에는 보기 어려웠던 난치병과 성인병들이 만연하고 있다는 우리의 일반적인 인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시뻘건 속살을 드러낸 민둥산이었던 우리의 산들은 이제 발을 들여놓기 어려울 정도로 울창한 숲으로 변했다. 구경하기도 힘들었던 송이버섯이 그야말로 지천으로 자라고 있다.

도시의 생활 환경도 크게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매캐한 연탄 가스와 재래식 화장실 냄새로 가득했던 골목길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연탄재가 수북하게 쌓였던 허술한 주택이 말끔한 아파트로 탈바꿈했고, 생활하수가 시커멓게 썩어가던 청계천에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도시에서의 삶이 바쁘고 복잡하고 고달프기는 하지만 포기해 버릴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니다. 30년 전의 사람들이 한가했던 것은 충분한 일거리가 없었기 때문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콘크리트 숲이 차갑고, 흉하다고 불평만 할 일은 아니다. 그런 시설을 애타게 그리던 시절이 얼마 전이었다.

우리가 극심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는 인식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우선 신생아의 절반 이상이 돌을 넘기지 못하던 시절의 아픔을 담은 ‘반타작’이라는 말은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사실 초원의 왕이라는 사자는 물론이고 풀밭에서 자라는 잡초까지도 세상에 태어난다고 반드시 자연적인 기대 수명을 다할 수 없는 것이 냉엄한 자연의 섭리다. 영아 사망률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줄어든 것은 현대의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보건 위생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만 혜택을 받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몸에 생긴 아무리 작은 이상도 정확하게 알려주는 첨단 진단 기술과 획기적인 수술 기술, 그리고 합성 화학과 생명공학 기술에 의해 싼값에 대량으로 공급되는 의약품이 만들어내는 기적은 상상을 넘어선다. 느닷없이 출현한 괴질(怪疾)이 하늘이 내린 천형(天刑)이 아니라 바이러스에 의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임을 밝혀낸 것도 과거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기적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질병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절대 아니다. 아직도 우리는 영생(永生)의 비법을 찾아내지는 못했다. 아마도 그런 비법은 영원히 찾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세상에 태어난 우리는 죽음이라는 운명을 영원히 벗어날 수는 없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뜻밖의 사고나 질병이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길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암을 비롯한 치명적인 질병을 모두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기껏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삶의 질 저하를 최소화하는 것뿐이다. 현대의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런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공연히 이룰 수 없는 꿈을 위해 아까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본래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다. 그렇다고 그런 욕심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기적도 사실 우리의 끝없는 욕심이 아니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기적이 결코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욕심이 우리의 이성을 마비시켜서 우리 스스로 이룩한 성과를 부정해버리고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동경(憧憬)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극성을 부리는 것이 바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전통의학이다. 먼 옛날부터 우리의 문화와 함께 해왔던 전통의학을 계승해서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에게 질병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의학에 대한 역사적 진실은 절대 외면할 수 없다. 천연물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의학은 본래부터 극소수 지배자들만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명백한 역사적 사실은 전통의학이 상상을 넘어서는 영아 사망률을 낮춰주지도 못했고, 평균 수명을 늘여주지도 못했다. 더욱이 전통의학이 아직까지도 아전인수(我田引水)와 순환논법(循環論法) 이외에는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동의보감」에 수록되어 있다는 사실은 과학적으로 아무런 근거가 될 수 없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분명하게 밝혀져 있는 과학 상식을 바탕으로 하는 보다 분명한 설명이 필요하다.

우리의 평균 수명이 놀라운 수준으로 길어진 것은 정치적, 사회적 민주화나 세계화 때문이 아니다. 오로지 먹을거리가 풍부해졌고, 보건 위생 환경이 크게 개선되었으며, 의료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모두가 현대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가능해진 성과다. 그런 분명한 성과를 외면하고 신비주의에 집착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현대 의학이 우리가 원하는 수준으로 완성되지 못한 것이 비난의 이유가 될 수도 없다. 현재까지의 성과만으로도 현대 의학은 충분히 존중받아야만 한다. 2년마다 1년씩 더 오래 살도록 해준 성과는 결코 가볍게 폄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 밝은 올해도 그런 기적이 계속되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서강대  화학 및 과학커뮤니케이션 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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